[위기의 로스쿨] 잘못 꿴 첫 단추… 어설픈 법조인만 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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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로스쿨] 잘못 꿴 첫 단추… 어설픈 법조인만 양산

by 끝장토익 토익과외 201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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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로스쿨 2학년에 재학 중인 A씨(29)는 수업이 끝나면 늘 MP3 플레이어를 통해 주말에 녹음해 온 신림동 고시학원의 민·형법 강의를 듣고 있다. 과 수석으로 학부를 졸업했을 정도로 공부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비법대 출신인 A씨에겐 한 학기에 책 한 권씩을 떼는 로스쿨의 수업방식이 영 버겁기 때문이다. A씨는 "로스쿨 커리큘럼상 과거 법대생들이 1년 동안 배울 진도를 3개월 만에 끝내다 보니 나 같은 비법대생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유급이라도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수박 겉핥기 식 커리큘럼, 학점 세탁도=로스쿨 재학생들이 꼽는 로스쿨의 가장 큰 문제는 '수박 겉핥기 식' 커리큘럼이다. 사시 출신들은 통상적으로 법대 4년과 연수원 2년을 합쳐 총 6년 이상을 법학 공부에 매진하지만, 로스쿨 출신들은 법학을 배운 기간이 3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기본기에서부터 격차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법조계로부터 "엉성하게 법을 배우니, 졸업 후 실무를 헤쳐 나갈 기초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로스쿨의 '고시학원화' 현상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로스쿨 학생들은 로클럭(재판연구관)·검사 임용이나 대형 로펌 취업에 도움이 되는 상거래법과 형사소송법, 민법, 회사법 강의에는 몰리지만 국제법과 지방자치법처럼 취업과 상관이 없는 과목은 외면하고 있다. 지방의 한 로스쿨 재학생은 "국제법이나 인권법, 법조윤리 등의 과목은 수강 인원이 적어 애초에 폐강돼 듣고 싶어도 못 듣는다"며 "마치 학생들 모두 취업을 위한 고시학원에서 속성 강의를 듣는 듯하다"고 말했다.

로스쿨들이 취업률 올리기에만 혈안이 된 나머지 재수강이나 계절학기 등을 이용해 '학점세탁'을 부추기고 있는 것도 로변의 불신을 부추기는 요소 중 하나다. 로스쿨의 학점은 기본적으로 상대평가를 원칙으로 하지만, 재수강이나 계절학기 등을 통해 학점 세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로스쿨 3학년 B씨(30·여)는 "일부 로스쿨의 경우 선발 시 학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로클럭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 재수강·삼수강은 물론 계절학기를 동원한 '학점세탁'을 오히려 장려하고 있다"며 "이러한 편법은 결국 법조계의 로변 기피현상을 부추기는 '제살 깎아먹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점세탁은 물론 아예 로스쿨 학벌을 세탁하기 위해 재수나 반수를 감행하는 학생들도 상당수다. 변호사가 되는 최종 관문인 변시 성적이 공개되지 않는 현 제도 하에서 로스쿨 출신 법조인을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는 사실상 로스쿨 간판과 학점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반수생 이탈이 많은 상당수 로스쿨이 LEET(법학적성시험) 시험일에 자체 모의고사를 실시하고 미응시자는 장학금 선정대상에서 제외하는 등의 묘수를 쓰고 있지만, '강제동원령'(강원대·제주대·동아대·원광대·영남대)이나 '충전아인'(충북대·전북대·아주대·인하대)등 지방 소규모 사립 로스쿨의 학생 이탈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고등법원 단위로 통폐합 VS 지방 로스쿨 지원 강화=학생 수가 40∼80명에 불과한 일부 지방 소규모 로스쿨의 경우 반수생이나 자퇴생 등 학생들의 이탈이 계속되면 문을 닫는 상황까지 배제할 수 없다. 한 지방대 로스쿨 관계자는 "정부에 재정지원을 요청할 경우 혹시나 부실학교로 낙인 찍혀 인가 취소가 될까봐 끙끙 앓고만 있다"며 "결국 지방대 로스쿨의 경우 이탈 인원만큼 다음 연도에 추가 모집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했지만 여전히 학교 운영이 어려운 상태"라고 귀띔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런 이유 때문에 정원을 채우지 못하거나 운영이 어려운 지방 로스쿨들을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 등 전국 5개 고등법원 단위로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로스쿨 관계자는 "우리보다 앞선 일본의 사례에서처럼 경영 악화와 지원자 급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역 소규모 로스쿨들의 경우 구조조정을 통해 통폐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최근 변시 합격률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거나 로클럭·검사 등을 배출하지 못한 대학들도 퇴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역 사회의 법조 전문인력을 키운다는 게 지방 로스쿨 도입 목적이었던 만큼, 통폐합이나 퇴출보다는 '체질 개선' 쪽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학교별 특성화와 법조계 등 지역 유관기관과의 긴밀한 협조가 뒷받침된다면 향후 로스쿨이 지역 사회에 충분히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준동 부산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시장과 고용 규모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는 바람에 교육계와 지역 법조계 모두 혼란을 겪고 있지만 최대한 협조하면서 난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지역 변호사회와 학교, 법원 등이 정기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역 로스쿨생들의 교육과 진로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법조계 기피현상 타파 위한 실무능력 키워야=아울러 올해로 도입 5년째를 맞는 로스쿨과 로스쿨 출신 변호사에 대한 전반적인 법조계의 기피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자격 없는 수험생들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변시 합격률을 하향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치러진 시험에서 배출된 75∼87%의 합격자들이 변호사 시장의 지나친 '공급 과잉'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서울 서초동에서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C변호사는 "로스쿨 재학생들이나 교수들은 무조건 '합격률을 높여라' '시험을 쉽게 내라'고 주장하지만, 길게 보면 궁극적으로 자기 밥그릇을 걷어차는 짓"이라며 "변시의 변별력 확보 없이 지금 같은 수준으로 계속 밀고 나간다면 로스쿨 출신 변호사 자격에 대한 신뢰도는 심각하게 추락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이밖에 로스쿨 제도를 잘 정착할 수 있게 하면서도, 금전적인 이유로 로스쿨을 다닐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보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 한 대형 사립로스쿨의 D교수는 "로스쿨이 높은 학비로 '돈스쿨'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관련해서도 보완적 장치가 절실하다"며 "저렴한 등록금과 최소한의 시간을 통해 로스쿨 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방송통신대학과정이나 사이버 로스쿨을 만드는 방향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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